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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눈으로 보는 호남선교 10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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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email protected] 입력 2014.09.3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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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김제, 나주에서 복음사역 ‘첫 발’ ... 1983년 자양 합회 승격
호남합회는 1983년 4월, 제13회 자양 합회 창립총회를 거치며 비약적 발전의 기틀을 다졌다. 사진은 지난 2011년 완공한 합회 선교센터 전경.
현대진리가 한반도에 전파되던 1910년대는 민족적으로 매우 암울한 시기였다. 일제는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합시킨 후 무단 통치를 감행했고, 1912년부터 8년 동안 대대적인 토지조사사업을 벌여 토지를 약탈했다.

이런 격동의 시대 속에서 김제와 나주평야에서부터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라’는 세천사의 기별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1914년 5월 열린 제4회 조선 미션 연례회의를 마친 조선대회는 당시 이근억 목사와 김석영 전도사를 호남에 파송했다.

이근억 목사는 그 해 개통한 호남선 열차를 타고 김제역에 내려 전북 김제군 월촌면 월랑리에 선교터전을 마련했고, 김석영 전도사는 전남 나주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그해 10월 김석영 전도사는 전남 광주군 송정면 송정리에 작은 집을 얻어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호남 최초의 교회인 송정리교회다.

호남선교의 여명을 밝히는 첫 찬미소리는 송정리에서 나주와 남평, 광주중앙으로 울려퍼졌다. 김제는 오산과 익산으로 복음의 등불이 전파되었고, 순천과 보성으로 확산됐다.

선교발전은 무척 느리게 진행되었으나, 복음의 생명력은 끊어지지 않아 광양에도 재림기별이 전파됐으며, 군산에서 최초로 문서가 배포된 이래 문서전도인의 열정과 헌신으로 여수와 진도지역에도 재림기별이 뿌리내렸다.

초기 호남의 선교역사는 행정적으로 분할과 합병, 조직과 해산의 굴곡을 거쳐야 했다. 1919년 5월 조선합회는 서선대회와 중선대회, 남선대회로 분할됐으며, 1934년 6월 남선대회는 다시 영남과 호남으로 나뉘었다. 1939년 4월 영남과 호남은 다시 남선대회로 합병 조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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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12월 28일, 한국 재림교회는 일제의 탄압으로 교회 해산의 비운을 맞는다. 당시 전국에는 100개의 교회와 3000명의 교인이 민족의 해방과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1946년 4월 광복 후 한국 재림교회는 북한대회와 남한대회로 조직되었으며, 1947년 6월에는 전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다시 북한대회와 중한대회, 남한대회로 분할된다.

1952년 5월, 남선대회는 영남과 호남으로 재분할되었으며 호남대회는 광주시 장동 62번지의 중앙교회 1층에 사무실을 두고, 초대 대회장에 허만식 목사를 추대했다. 그해 3월에는 제1회 총회를 개최했다.

1955년 제2회 총회를 산수동 호남삼육중고교 강당에서 열었으며, 1959년 궁동 19번지에 교회와 대회를 신축하여 1층은 대회 사무실로, 2층은 교회로 사용했다. 하지만 1967년 1월 화재가 발생해 대회와 교회 건물이 전소해 인근 YWCA에 사무실을 얻어 사무를 봐야 했다. 그해 9월 현재의 궁동중앙교회 터에 대회를 신축해 입주했다.

그러나 1968년 1월 1일 중서와 호남은 다시 서남대회로 합병되었고, 1971년 4월이 되어서야 서남대회는 호남과 중서를 분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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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당시 대회장 정영근 목사가 광주시 주월동(60년에 구입한 대지)에 대회를 지어 이전했으며, 중앙교회 성도와 서부교회 성도 일부를 구성원으로 현재의 빛고을교회인 광주본부교회를 창립했다. 그해 11월 29일, 호남대회 본부를 궁동에서 주월동으로 이전했다(복음회관 385평 신축, 건축비 1억2000만원).

호남합회는 1983년 4월 6일, 제13회 자양 합회 창립총회(합회장 설영철)를 거치며 비약적 발전의 기틀을 다졌다. 1986년 6월에는 전남 화순군 한천면 고시리에 7500평 규모의 ‘미스바연수원’ 부지를 구입했으며, 1991년 4월에는 광주위생의원 및 합회 교육관(연면적 414평, 건축비 5억원)을 준공했다.

1993년 6월에는 4억4000만원의 건축비를 들여 350평 규모의 미스바연수원 본관동을 신축했고, 이듬해 8월에는 운주에 삼육식품 제2공장을 준공했다. 1996년에는 여수요양병원을 준공해 의료선교사업의 새 지평을 열었다.

호남합회 선교사업의 중요한 성장동력으로 ‘교육사업’을 꼽지 않을 수 없다. 교세가 미약하던 시절에도 믿음의 선조들은 복음이 전파되고, 몇 명의 학생이라도 생겨나면 어려운 환경이지만 학교를 설립해 후세들을 위한 신앙교육을 전개했다.

1916년 7월 남평 풍림리 집회소에서는 호남 최초로 ‘남명사숙’이라는 학교를 설립해 선지자 교육의 토대를 닦았다. 1920년 무안군 청계면 대곡리에 삼육학교가 설립되었으며, 이후 광양의 광명, 군산의 정명, 정읍의 호명학교가 세워졌다. 1950년대 이르러 보성, 익산, 순천, 여수, 장흥, 목포에 삼육초등학교가 문을 열었다. 진도의 소포삼육중학교, 완도에서는 청해 야간중학교를 운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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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광주시 장동에 소재했던 중앙교회 1층을 개조해 문을 연 호남삼육중학교는 장족의 발전을 거듭해 지금은 이 지역 대표적 명문사학이 되었다. 2001년 2월에는 호남삼육중.고의 대강당과 기숙사가 준공됐으며, 2003년 7월에는 광주삼육초등학교의 다목적관을 지었다. 같은 해 9월에는 광주삼육초등학교 본관 4개 층 리모델링 공사가 완료됐으며, 올 4월에는 영어 학습관을 마련돼 발전을 가속화하고 있다.

2007년 광주시 매월동에 부지를 매입하고, 기공한 합회 제2선교센터는 이듬해 10월 17일 완공됐다. 2010년 11월 남구 주월1동에 기공한 합회 선교센터는 2011년 12월 24일 준공해 이 지역의 ‘선교 랜드마크’가 되었다.

2009년 1월 22일에는 호남합회 임시 총회에서 호남합회로부터 제주도를 분리하여 한국연합회 소속시키기로 결의(분리일: 2009년 3월 1일부)했다. 이로써 1998년 18회 총회부터 제기된 제주지역 분리 문제는 5회기, 15년에 걸친 행정문제를 일단락 했다.  

호남합회는 복지, 교정, 구호 등 다양한 방면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1993년 3월 개관한 두암종합사회복지관이 대표적이다. 광주광역시로부터 수탁한 두암사회복지관은 국가위탁형 사회복지사업을 교단 내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상징적 기관. 두암복지관에서 경험한 선 지식과 양성된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이후 동해노인복지관, 동대문종합사회복지관 등 전국의 여러 복지시설을 수탁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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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04년 3월에는 정읍시노인종합복지회관이 문을 열었으며, 2008년 5월에는 전주 양지노인복지관이 개관해 지역사회 노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2011년 2월에는 진도군 노인전문요양원을 설치했다.

광주 남선교회에서 시작한 교도소 선교사업도 눈길을 끈다. 이 역시 호남합회가 가장 먼저 시작해 지금은 전국적인 교화 선교사업으로 발전한 사례다.

아드라 구호사업에 있어서도 재난이 있는 곳이라면 합회의 지경을 넘어 봉사했다. 특히 올 봄 발생한 ‘세월호’ 침몰 참사에 기민하게 대처하여 아픔과 실의에 빠져 있는 이웃에게 위로와 봉사의 손길을 전했다. 진도 팽목항에서 실시한 아드라 밥차 봉사는 재림신앙 공동체가 대동 협력하여 수행한 빛나고 아름다운 결실의 한 장이었다.

지난 7월 29일 합회 선교 100주년 기념교회로 기공한 송정교회는 현재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며, 오는 12월 중순 준공 예정이다. 합회는 이곳 2층에 기념물 전시실도 마련해 소중한 선조들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을 준비하고 있다. 건축이 완료되면 한편에 100주년 기념비를 세워 우리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의 언약과 섭리를 기억할 마음이다.

호남합회는 전라북도 북쪽 끝 군산과 무주 설천부터, 땅 끝 해남과 정남진, 장흥군 신흥과 대덕, 전라남도 동쪽 끝 광양 다압과 서쪽 진도, 그리고 암태도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 전역에 세천사의 기별을 전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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